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한번 쓰기 시작하면 쓸텐데, 쓰기 전까지는 엄두가 안 나요... ㅎㅎ
 일단, 멋진 분들과 금요일마다 (히히) 만나게 해준 낭금 감사하구요! 계속 이 인연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언니들, 오빠 모두 품고 있는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 언젠가 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직도 말할 때 너무 두근거려서 눈도 못 마주치겠어요... 그래도 다들 따뜻하게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 준비한 만큼 다 말하지도 못하고, 말도 짧지만 말할 때는 힘을 실어서 말하는 거예요. ㅎㅎ  쉬지 않고  듣고, 쓰고, 말하고, 읽고하는 게 익숙치 않아서 (고백하자면) 처음에는 멍 때리는 일이 많았었어요.. 티 나지 않았겠죠..... ㅎㅎ 티 났나.. ㅎㅎ 요즘은 낭금식구들 (!) 이야기가 친구들과 하는 이야기보다 더 재밌게 느껴지고, 더 집중하고 생각하면서 듣고 있어요. 훈훈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후기 들어갑니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없어! 라고 수없이 외쳤습니다. 이미 말씀 드렸듯, 저는 책을 읽는 동안은 주인공과 함께 호흡하거나 사랑스럽게 지켜보곤 하는데 이번 작품은 그러기엔 너무 힘겨웠습니다. 최근에 사랑의 씁쓸함을 느꼈던 저 때문인지, 등장인물들을 사랑할 여유조차 주지 않고 멋대로 사랑을 시작해버린 베르테르 때문인지, 베르테르의 기도와 간구를 냉소적으로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자꾸만 베르테르 행동에 토를 달고, 혀를 차게 되더라구요. 이 순수한, 사랑에 빠진 바보같은 젊은이 어찌하면 좋을까...... 
이런 부분들이요. 낭금식구들이 읽어주신 부분들 포함해서. 너무 많아서 책에서 눈에 띄는 장면들만요. 
(민음사 68page, 1부 7월 25일) 로테의 편지지 위의 모래
(민음사 139page, 2부 9월 12일)  카나리아 키스
(민음사 151page, 2부 11월 21일) <사랑하는> 베르테르씨라고 인사
그리고  어딘지 모르겠지만 논란이 된 로테의 숨결 (!)
관련해서 로테가 어떤 여성.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선생님이 베르테르는 로테의 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 모두에서 끌렸다고 설명해주셨다는 것을 덧붙입니다. 로테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을 때, 아이들에 둘러싸여 빵을 나눠주던 로테의 모습 등과 더불어 작품 곳곳에 로테에 대한 에로스적인 묘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맞나요?)     
 
 그러나 책을 읽고 나서는  베르테르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베르테르는 사랑에서나 일에서나 스스로의 세계를 세워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따라 온전히 살아가는 정직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낭금식구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주위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고 감정에 이끌려 행동하고 결국엔 자살을 선택하는 미성숙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구절을 읽어 보시면, (민음사 21 page, 1부 5월 22일 편지)
 
 인간의 일생이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여러 사람들이 절감하였겠지만 내 주위에서도 그 느낌은 항상 그림자처럼 맴돈다. 인간의 활동이나 연구도 어쩔 수 없는 한계에 사로잡히는 것을 볼 때, 그리고 모든 활동이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집중되고 있으며, 욕망이라는 것 자체에도 우리의 불쌍한 삶을 연장시키는 것 말고는 다른 목적이 없다는 사실을 통찰할 때, 그리고 또 연구가 어느 단계에 올라 만족할 수 있음은, 인간이 자신이 갇혀 있는 감방의 벽에다가 여러 풍경과 형상들을 화려하고 밝은 색으로 그려놓고 기뻐하고 있는 식의 허울 좋은 체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 이 모든 것을 생각해 볼 때, 빌헬름, 나는 할말이 없어지고 만다. 나는 자신의 내부로 되돌아가서 그곳에 하나의 세계를 발견한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명확한 표현이나 생생한 힘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오히려 막연한 욕망 속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내 감각 주변을 어슴푸레하게 떠도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한결같이 꿈을 꾸면서 그 세계에다 미소를 던진다.
-중략-
그러나 그 모든 일이 어떻게 끝날 것이며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겸허한 마음으로 인식한 사람, 여유 있게 사는 시민 하나하나가 그들의 조그마한 정원을 손질하여 낙원으로 꾸밀 줄 알고, 불행한 사람마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거리면서도 끈기 있게 스스로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이 햇빛을 다만 1분 간이라도 더 오래 쳐다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그렇지. 그런 사람은 말없이 자기 자신 속에서 스스로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리 제약을 받고 있더라도, 항상 마음속에서라도 자유라는 즐거운 감정을 간직하고 있다. 자기가 원하면 언제라도 감옥 같은 이 세상을 벗어날 수 있다는 그런 자유의 감각 말이다.
 
 선생님과 혜완 언니, 수영 언니 이야기를 듣고 든 생각이지만, 베르테르는 그저 '감성적이기만 한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읽은 부분은 여기였습니다. 베르테르가 다시 로테 곁으로 되돌아온 뒤 그가 치밀어오르는 격정적인 사랑에 고뇌하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동시에 베르테르는 그의 이런 운명을 아무런 원망없이,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그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가 내심 자신의 끝을 예감하고 있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였습니다.  (민음사 150page, 2부 11월 15일)
 결국 인간의 운명이란 자기에게 주어진 분수를 참고 견디어내고 자기 잔의 술을 남김없이 마셔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술잔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도,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을 때 너무나 입맛이 쓰다고 말씀하셨거늘, 어찌하여 내가 허세를 부려 그것이 내 입에 단 것처럼 가장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의 존재 전체가 생과 사 사이에 끼여서 몸부림치고 과거가 번갯불처럼 어두운 미래의 절벽 위에 번쩍이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가라앉아 나와 더불어 멸망하려고 하는 이 무서운 찰나에 무엇 때문에 내가 수치스러운 생각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 이렇게 헛되이 솟아오르려고 몸부림치는 힘의 깊은 밑바닥으로부터 이를 갈면서 부르짖는 것은, 자기 자신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궁지에 몰려서, 오도 가도 못한 채 정신을 잃고 어찌할 도리 없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인간의 부르짖음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내가 그런 부르짖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런 순간에 대해서 겁을 먹을 필요가 어디 있을까? 하늘을 한 폭의 피륙처럼 둘둘 말아버릴 수 있다는 하느님의 아들도 피하지 못했던 그 순간이 아닌가.    
 
  또 베르테르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울증(민음사 page55부터, 1부 7월 1일)대해서는 다른 태도를 취한 베르테르에 대한 분석과 함께요. 왜 우울증과 자살에 대해서 상반된 태도를 취했는지(그저 슈미트에 대한 반발이였는지 아니면 도대체 왜?)에서부터 애초에 우울증과 자살이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었죠. 자살을 결정한 그의 행동에 대해서도요. (혜완언니와 수영언니가 말했는데, 아주 좋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요..... ㅠㅠ 도피가 아니라 감정의~~~ 모르겠다 ㅠ)
 
 작품의 작가 괴테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도 빼놓을 수가 없죠. ^^ 그리고 공부하고 나서야 눈에 보인 여러 모티프, 복선들 있었구요! 제 개발새발 메모를 참고해 작품과 관련된 내용만 적자면...... (정확하지 않아요~~) 
괴테는 독일문학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가 낭만주의에 몸을 담그고 있었던 20대에 쓰여진 작품으로 고전주의- 조화와 통일로 대표되는-를 따랐던 30대에 개작되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작품은 이전의 작품보다 편집자의 비중이 늘어난 것입니다. 또한 왜 서간체 형식으로 쓰여졌을까요? 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주목할만한 모티프는 1부에서 2부로 넘어가고나서, 베르테르가 호메로스에서 오시안으로 관심을 옮긴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1부, 즉 호메로스의 세계(아이의 세계, 감정의 세계)가 신과 인간의 조화를 드러낸다면 2부 오시안의 세계는 격정을 드러냅니다. 1부의 키워드는 아기, 잘 그려지는 그림, 봄, 여름 이지만 2부의 키워드는 가을, 겨울, 알베르트, 잘 안 그려지는 그림(우울우울)입니다. (맞나요?) 또한 베르테르가 그렇고 말고. 나는 단지 한 사람의 나그네에 지나지 않지. 이 지상에서의 일개 순례자말이다. 자네들이라고 해서 그 이상의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라고 말했던 것처럼, 베르테르의 삶은 떠남의 연속이였습니다. 설명을 들으면서 일에서 자연으로, 다시 일에서 자연(죽음) 이렇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베르테르의 슬픔은 시민의 좌절을 담은 사회소설이기도 평가 받기도 합니다. 시민사회에서, 또 예술가(범인!)로서 모두 실패한 베르테르...... 또는 크리스마스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괴테와의 대화를 참고해볼 때, 베르테르의 슬픔은 청춘에 대한 소설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 외 소개해주신 문장들
죽어라, 그래야 이루리라  (괴테)
죽음은 그 사람에 대한 정의를 내리게 하지만, 자살은 그 사람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데미안에 대한 내용 추가합니다. :D 남산강학원언니오빠선생님께 배운 점을, 감기에 머리 지끈지끈 거리면서 생각한 내용이예요. *^^*
 
새가 알에 있는 상태가 안전한 껍질과 따뜻한 어미 품에 싸여, 오직 무럭무럭 자라야 한다는 목표만을 가진 것이라면, 어미새와 자신이 '운명의 부름'을 받고 알을 깨는 것은 자신의 단순한 세계를 부수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헤세의 비유를 일반적인-표적을 갖지 않은-사람들에게 전쟁이 그들의 세계를 스스로 깰 수 없는 이들의 알을 깨주고 (어미새와 같이) 미약하나마 깨려는 힘을 쥐어주고 (정치적 명분, 애국심 등등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해주었다는 의미로 본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사람들은 적나라한 현실을 (선과 악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세계) 직시하며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알을 깨는 행위가 진보가 아니라, 헤세가 주장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해주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총알 하나하나로 사람을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리지 못하며 사람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고 한 헤세의 서문에 더 눈길이 간다. 책이 싱클레어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라면, 서문은 그 이후의 싱클레어가 적고 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