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지우개가 있다

이 지우개가 지우개일 수 있으려면 지우개로 작동할 때 지우개이다

내 마음이 지우개를 보고 칠판을 지우는 행위를 할 때 즉, 내 마음이 지우개라는 물物에 가 닿아

지운다는 행위를 할 때 지우개는 지우개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지우개를 지우는 용도가 아니라 졸고 있는 자로성연을 깨우는 용도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지우개가 아니라 그 때는 잠깨우는 어떤 도구인 것

 

어느 날 똘아해 자로성연이 지우개를 분첩인 줄 알고 분필가루 뭍은 지우개를

얼굴을 토닥거리는 용도로 쓴다면 그건 지우개가 아니라 분첩이라는 뜻?

 

마음이 물에 가 닿아서 행해지는 행위나 일事을 격물이라 한다면

본래 가지고 있던 지우개의 본성은 없는 것인가

양명의 물은 격물을 물 자체를 보는 게 아니라 그 물이 어떤 식으로 행해지는 방식으로의

물만을 물이라 하는가

 

지우개는 졸고있는 내 머리 위에 던져지든

맛이 간 자로성연의 분첩으로 사용되든

어찌됐든 지우개는 지우개 아닌가

 

문샘께서는 산중관화를 예로 들어주신다

저 꽃이 내 마음에 와 닿지 않을 때 저 꽃은 적막 속에 돌아가 있다

내 마음에 와 닿으면 그제야 내가 보는 바로 그 꽃이다

적막 속에 돌아가 있다는 건 무엇인가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있어서의 어떤 특정한 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인 듯.

적막 속에 돌아가 있는 지우개는 미발未發의 지우개인 것이다

아니다 아니지 물 자체가 내 생각이 가 닿기 전까지 물이 물 자체로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인데.....

양명의 물은 이러하다

.............

 

 

이제 우리는 그림 하나를 그리고자 한다

 

여기 초여름의 아름다운 꽃밭이 있다

분홍빛 노랑빛 보랏빛 흰빛 각양각색의 꽃들이 푸르른 풀밭 사이로 피어있다

그 평화롭고 아름다운 꽃밭 사이로 한 소녀가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걸어간다

그 소녀의 두 손에는 아주 깨끗하고 맑은 물 한그릇이 있다

 

소녀는 아름다운 5월의 꽃밭 사이를 그 물그릇의 물을 쏟을세라

조심조심 살금살금 천천히 그러나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때는 해맑은 오월의 아침

햇살은 눈부시고 꽃밭은 아름답다

소녀는 사랑스럽고 물 그릇의 물은 맑고 차다

 

자. 그림이 연상되는가

 

우리는 바로 그 소녀이고 물그릇의 물은 우리가 공부로 얻은 깨달음이다

 

우리는 눈부신 오월의 꽃밭을 물을 쏟지 않으려 조심조심 걸어가는 그 소녀인 것이다

혹여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물그릇의 물을 조금 흘린다 해도

그 소녀는 마지막 도착지까지 소중한 물그릇을 쏟지 않으려 애쓰며 걸어갈 것이다

 

그러다가 왕창 쏟게 되더라도 뭐 걱정없다

다시 차고 맑은 물을 구하여 또다시 걸어가면 되니까.

 

 

 

 

2012년 5월 낭금시작하는 밤

부천학파와의 떠거운 술자리를 마치고 ...

우리가 남이가~~우리가 바로 문가아이가~~~~~~~~

소녀라 하기엔 좀 된성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