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 읽기 세미나 3주차

1. 일자: 2011.7.12
2. 범위: 인간과 상징 1부, 2부
3. 참석: 인비, 노정태, 송성복, 희사, 이현숙, 오카, 달군, 정규정
4. 내용

<발제>
현숙: 아니무스를 언제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정태: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일 때, 여성성만 가지고 있을 때 의식적 또는 무의식으로부터 나타난다.
희사: 친구분이 그림자를 보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성상이 꿈에 나타나지 않았나.
현숙: 적나라하게 육두문자로 친구에게 욕을 했다.
정태: 인간과 상징에서 귀부인의 꿈에 사람들이 자신을 따돌리는 꿈을 꾼다. 이것은 추한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무의식으로부터의 상징인데 친구분도 그와 같은 의미이다.
성복: 자기가 꿈에서 천박한 모습으로 꿈에 나타난 것은 자기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인비: 현숙 선생님이 친구분에게 이야기해 준 정감은 무엇인가?
현숙: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말해주었고 거친 남자로 보였다.
오카: 남성이 나왔다고 남성상만 단정지을 수 없다. 다른 의미를 표상하는 것 일 수도 있다.
희사: 성복 선생님 발제 2page에서 미분환의 에너지로 돌아가는 것은 개성화의 일부인가.
성복: 퇴행하는 것이 개성화의 과정이고 일부이다.
정태: 인간은 왜 변하려 하는가. 인간이란 천적이 없는데 왜 변화(진화)하려고 하는 것일까.
성복: 먹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강한 동물이 살아 남았다. 인간은 천재지변도 어느정도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현대인은 과학지식이 있음에도 불안하다. 왜 그런가 융에 따르면 의식과 무의식 간극이 멀어질 때 무의식으로부터 누미노제에 의해 신경증이 생기고, 정신적 해리가 나타난다. 공허함, 허탈함이 그러하다. 진화하면서 무의식의 한계를 외부에서만 찾고 적응하였다. 무의식의 신호를 잃어버리고 한계를 잃어 버린다. 자기의 한계를 모르면 변화할 수 없다.
성복: 왜 다른 점이 있으며 자율적으로 투사하는데 인간의 네 가지 심리적 기능(사고와 감정, 감각과 직관)에서 감정으로 느껴지는 것은 막힌 신호이다. 우리는 연금술사 이야기하며 감정으로 해결한다. 직관까지 개입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변화하고 싶다면 개성화과정에서 혼돈의 덩어리를 해결해야 한다.
변화는 하루 아침에 드러나지 않는다.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글을 쓰고 행동해야 변화한다. 개성화 과정에 충실해야 한다. 나는 윤리(자신만의 법)가 부족하다. 꿈을 바라보는 윤리관이 새로운 충동으로 나아갈 때 의식과 무의식의 상을 해설하는데 그때 필요한 것이 윤리이지 않을까. 의식과 무의식을 흐트려야 한다.
오카: 꿈은 의지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상징에 풍부한 무엇이 있어야 한다. 상징 사전을 통한 분석한 결과가 본인에게 의미가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것으로 다른 길은 간다.
성복: 꿈의 상징을 의식과 비교해서 내 외향을 해석하기 때문에 의지에 의해서 아는 것이 아닌가. 상징의 위험성까지 받아들여야 제가 가질 수 있는 윤리가 생긴다. 그래서 죄악의 시나리오도 받아 받아들인다.
정태: 꿈과 상징은 자신의 상황에 따른 분석이 있어야 한다.
오카: 꿈 몇년이 지나면서 이것이 그것이었구나 하고 꿈이 해석이 된다. 오래전 꾸었던 꿈에 대한 느낌만 이었는데 노트에 적었던 것을 최근에 보았다. 거기에 경찰이 등장하는데 지금에와서 생각하니 내 자신을 사찰(검열)하고 있었다. 나의 의식을 사찰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해석이 되지 않았다.
인비: 융도 자선적에서 피빛의 환상을 보고 해석이 되지 않아 불안해 하였다. 그러며서 평생에 걸쳐서 이 환상에 대한 해석을 짊어지어여 한다고 밝히고 있다. 꿈과 환상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해석이 될지 알 수 없다. 꿈과 환상의 해석을 위해서는 학문을 통해 끊임없이 분석에 가야 한다. 성복 선생님의 변화하는데 두려움이 반영된다. 
성복: 미래에 대한 꿈이 나타난다. 내 꿈에 미래가 있다. 다른 세계의 신호를 보낸다. 
인비: 쇄신공포증이 아닐까. 무의식으로부터 알수 없는 메세지를 받으면 원시인을 의례를 통해 해소를 했으나 현대있는 알수 없는 것에 대해 불안이 나오는 것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낯선 것에 대한 히스테리한 반응을 보였다. 지금은 <종의 기원>에 대해 히스테리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알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인간은 불안을 가지게 된다.
희사: 예전에 신경증이 있을 때 모든 것을 잠근다. 내 사주에는 잠근다는 것이 필요하다. 밖에 힘을 쏟으니 내부에 힘을 보충하기 위해 잠구어야 한다. 외부에서 들어오지 않고 낯선 것에 대해 두려움웠다.
인비: 발제에서 '심리적 평형'이란 무엇을 뜻하는지.
현숙: 대극적 관점에서 차고 기울고 차고 기울고하면서 의식적으로 생각하면서 평형을 이루는 것이 꿈이 아닐가.

불안/공포
정태: 괴롭히는데 끄지어내야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희사: 불안은 에너지로 정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융은 종교를 가지라고 충고한다. 신앙이 있으면 자기를 지탱하기 어려울 때 신앙으로 자기를 버틴다. 신을 믿고 그쪽으로 돌린다. 
현숙: 완벽한 상태 불안에서 에너지가 
희사: 완벽이란 사건 사고가 없는 상태이다.
현숙: 자기 안에 여백을 메우려고 하지 않을까.
정태: 쇄신공포증 예정하지 못한 것
희사: 이니에이션 불안이 극복하기 위해 극한의 공통을 나의 한계가 이 정도이구나 하고 자각하는 것.
오카: 자기 문제를 보내야 한다. 에너지도 리비도를 행적으로 나가서 축구를 하거나 리비도가 어떻게 하는지 막아서 불안 해소된다. 불안하지 않으니 띠엄띠엄한다. 
정태: 리비도를 통해 에너지화하는 쪽으로 변화할  수 있다. 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운동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변화하듯이.
인비: 에너지가 변화라고 생각하고 사고향도 충동을 해결하는 것.

영웅
희사: 영웅신화에서 남자는 괴물과 싸우고 어머니의 도움을 받고 싸우고. 죽음은 자기를 버리고 
여성은 미녀와 야수가 있는데 내면에서는 여성으로서 본는이 수정하는 것. 여성성 수종하는 사람 따르는 모습을 강조하는데 남성은 싸우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런 부분에서 영웅신화를 해설한 사람은 보수적이다. 
오카: 융의 관점에서 모성의 윤리로 이야기 하지 않았다.
인비: 영웅신화에는 아니마/아니무스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영웅신화에 아니마/아니무스의 특징들을 나타내기 위해 남성 신화는 연인, 어머니가 나타나고 여성은 괴물, 아버지가 나타나는 것이다. 남성을 괴물과 싸우고 여성은 순종적인 모습은 서양신화에 많이 보이는 경향 일뿐 동양과 인디언, 아프리카 신화에는 여성을 영웅으로 다루는 신확가 많다. 
달군: 융이 보는 것은 서양의 가부장적 초월이다. 남성 여성이 정체젓이 페리조나 상태적으로 습득 문화적으로 본다. 융의 입장으로 보인다. 기본적인 전체 융의 사상이 그렇다.

인비: 온전한 자기를 무슨 의미인가
성복: 온전하게 자기 근육을 써서 난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온전하게 보기가 만만치 않다. 
희사: 융을 보아도 온전하게 보이지 않는다. 
성복: 온전하게 허물어야 변태가 가능하다.


<잭 구디의 역사인류학 강의>

"성찰성은 읽기 행위의 중요한 요소로서, 대화나 말의 즉각적인 상호작용은 없지만, 좀더 명상적인 방식의 이래를 조장한다. 내 식으로 설명하자면, 성찰성은 암묵적인 것을 가시적인 것으로, 곹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근대화는 바로 그런 지성과 감정의 기술들의 현실을 함축한다.(p155)"

"란츠는 "감정이 사람들의 경험의 일부가 되기 전에 사람들은 감정을 읽고 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시사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글쓰기와 읽기는 그 과정의 성찰적 성격으로 인해 감정을 정교하게 다듬고 고조시킨다.(p181)"

<번외>
세미나 때 제가 사다리에 올라가면 불안해 한다고 원인을 모르겠다고 해죠. 그런데 그 다음날 꿈에 제가 사후세계를 방문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사후세계에 가서 순번을 기다리는데 저와 다른 사진과 이름의 ID 카드를 주더군요. 그 순간 잘못왔다고 말하려는데 어떻게 밀렸는지 또 다른 세계로 밀려가더군요. 그곳은 어떤 곳이지 기억은 나지 않네요. 
그런데 꿈에 깨어났을 때 즐겁다는 정감을 받았습니다. 사후세계 즉, 죽음의 이미지인데 전혀 두렵지가 않더군요. 그리고 사다리가 죽음을 연상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엉뚱하지요. 사다리가 여러분이 지적하신 신분상승이 아니라, 사다리는 저에게 죽음을 상징입니다. 사다리의 상징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두려움이 작아 지더군요. 시험삼아 사다리를 올라갔는데 이전 만큼 두렵지는 않습니다. 


PS. 꿈 분석에서 일부는 사적인 내용으로 판단해서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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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 가려고 마을 버스를 기다리는 이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