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 <How to read 라캉>이 모두 끝났습니다!

정신분석학 책을 접해본 것이 이번이 처음인데,

프로이트는 좀 아리송?했지만 지젝이 소개해준 라캉은 꽤 재미있었어요~~^_^

 

이번에는 '라멜라'라는 다소 곤혹스러운 개념에서 토론을 출발했는데요~

지난 번까지 상징계 이야기가 나왔다면 이번에는 실재계가 주 초점이었습니다.

 

칸트의 물 자체가  '정지해 있는 명사형으로서의 실재계'를 뜻한다면,

그에 비해 라캉의 실재계는 훨씬 사건의 측면을 강조합니다.

게다가 실재계는 물질적인 실체라고 말할 수도 없죠.

실재계는 기표들이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그 '틈새'로 드러나는 것,  기표의 연쇄작용을  작동시키면서 동시에 왜곡시키는 낯선 침입자와 같습니다.

 

'대상 소문자 a' 역시 실재계입니다. 이것은 평범한 대상도 숭고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불가해한 힘인데요. 라캉은 이것이 일종의 왜상이라고 말합니다. 즉, 일관된 실체가 아니라, 힘(?)들이 휘어지면서 그 효과로 만들어진 허구적 대상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욕망한다는 것은 실재에 끌리면서 이 실재를 대타자에 기입하는 과정 자체입니다. 특정한 대상이 있어서 그것을 욕망하는 게 아니라요. 그러고보면 라캉에게 주체는 텅 빈 것이니까, '주체의 진짜 욕망' 같은 것은 존재할 수가 없겠습니다. (존재할 수 있다고 믿으면 히스테리 환자가 됩니다!)

 

잠깐 다른 현실차원들도 정리를 해보자면...

상상계가 상징계로 진입하기 이전에 제 머릿속에 있는 상태라면,

상징계는 이 세계를 기호화함으로써 상징의 좌표를 갖게 되는 차원입니다.

대타자는 상징계에서 기표의 연쇄를 가능하게 하는 척도, 의인화된 기준 같은 것이고요.

 

상징계와 상상계와 실재계는 일정한 순서대로 전개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서로 연관된 상태에서 동시적으로 작동합니다.

혜린쌤이 열심히 설명하셨던 상상-상징-실재의 삼각형....ㅋㅋ

 

 

우리가 현실에서 '즐기고 있다'고 믿는 순간조차도 라캉이 보기에는 초자아가 작동한 것에 불과합니다.

초자아는 실재계에 속하는데, 우리로서는 실현할 수 없는 것을 끊임없이 부추기면서 왜 너는 하지 못하느냐고 비난하고 괴롭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ㅋㅋ). 사회규범 때문에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된다는 자아이상에 반하여, 초자아는  "너는 왜 그것을 즐기지 못했지"라고 괴롭힙니다. 이 괴롭힘이 내부에서만 피어나는 외설적 욕망과 "즐겨야 해!"라는 쾌락(주이상스)으로 전환됩니다.

 

그런데 지젝은 재미있는 말을 합니다. 과거에는 신이라는 절대진리, 절대금지가 나의 외부에 존재했기 때문에  그것에 반작용하여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의식적으로는 신의 말씀을 계속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신이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무신론의 시대에는 진리의 기준이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겉으로는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하지만 스스로는 자꾸만 내부검열을 하게 됩니다. 신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역설!

 

순수한 쾌락은 없고, 결국 쾌락은 늘 금지된 것 이면에서 발생한다는 진리!

 

 

 

 

제가 라캉에게서 가장 크게 배웠던 것은 '자신에게 속지말라' 라는 거였습니다.

너무 섣부르게 내 욕망을 안다고 단정짓는 것은 위험합니다.

여러번 확인했지만, 진짜 내 욕망은 없으니까요. 우리는 종종 '욕망'과 '의도'를 혼동하지만, 대상 소문자 a는 그렇게 명쾌하지 않다는 거....

 

지젝이 제시한 재미있는 예시가 있습니다.

미국이 피카소의 '게르니카' 그림을 가렸습니다만, 그 덕분에 다들 미국의 본심을 알았습니다. 지금 미국이 국제정황에서 뭔가가 많이 켕기는(?)구나.

우리가 욕망하는 것도 바로 이 원리일 겁니다. 무슨무슨 이유 때문에 뭔가를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뒤집어보면 사실은 나를 욕망하게끔 만든 이 왜곡된 상황 자체가 바로 욕망의 정체입니다.  라캉 말대로, 가면 뒤에 있는 실재가 무엇이냐고 묻는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가면이야말로 깊은 속내에 뭔가가 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 착용되는 상징적 정체성이니까요. 비밀은 숨겨져 있지 않고, 숨기려고 하는 태도에서 거꾸로 투명하게 드러납니다.

 

라캉 식으로 하면, 우리는 매번 상황을 왜곡시키면서 욕망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욕망하느냐고 묻기보다는 내가 어떤 왜곡 속에서 이것을 욕망하게 되었는가를 질문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지젝이 덧붙이길, 우리가 '나는 이것을 욕망한다'는 근거를 완전히 부숴버리고서야 윤리와 저항을 튼튼히 세울 수 있다고 합니다. 음, 100%는 아니지만 74%정도는 공감 중입니다^*^

 

 

 

다음주는 드뎌 <앙띠 오이디푸스>를 읽습니다!

 

제1장의 3쳅터 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첨부해놓은 푸코의 서문 도 함께요.

 

발제는 선민 쌤,

간식은 주란 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