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밀양 투사’ 할머니들, “어머니는 강하다, 할매는 더 강하다”

“송전탑 반대, 돌아가신 시어머니와의 약속”

김백겸 수습기자
입력 2013-05-25 11:17:20l수정 2013-05-25 11:43:31
주민들의 반대에도 한전이 밀양 송전탑 건설 공사를 강행하자 연일 공사반대 주민과 한전 직원 및 경찰이 충돌하고 있다. 손주벌 나이인 한전 직원과 경찰에 알몸으로 맞서거나 밧줄로 목을 매고 굴삭기 앞에 드러눕는 극한투쟁을 하는 70, 80대의 할머니들은 “원하는 것은 고향을 지키며 사는 것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24일 오전 4시경 채 어둠도 가시지 않은 산 위에 위치한 127번 송전탑 공사현장에 대여섯 명의 할머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할머니들은 “이놈들은 산을 타고 새벽같이 온다”며 혹시나 경찰이나 인부들이 먼저 오지 않았을까 서둘러 공사현장에 올라 한전 직원들이 온다는 길목을 살폈다.

한전은 지난 20일부터 경남 밀양지역에 작년에 중단되었던 765kV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면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받고 있다. 한전은 주민들이 요구하는 전선을 땅에 묻는 방식인 지중화 공사는 예산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면서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함께 식사하는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

한국전력의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이 23일 오후 경남 밀양 부북면 평밭 127번 송전탑 공사현장 앞 움막에서 송전탑 농성을 마친 뒤 함께 식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송전탑 건설 반대에 나선지 1년4개월 됐다는 장모(57)씨는 “여기는 병을 가지고 왔다가 병이 나아서 살아가는 좋은 곳”이라며 “그런 곳에 초고압 송전탑을 세우는 게 말이 되나”라고 분노했다.

공사현장에 와서 절을 하며 기도를 드리던 우모(78) 할머니는 “우리 상할매(시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이 땅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며 “여기 오니까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절하고 미안하다고 하고 산신령께도 빌었다”고 말했다.

우 할머니는 주머니에 가득 든 약을 보여주며 “약을 이레 많이 먹어도 다리가 아파서 진통제를 안 먹으면 못 산다”며 “농약 먹고 죽어버릴까도 생각했는데 할매 약속도 있고 그러면 자식들이 못산다고 해서 그렇지도 못 한다”고 눈물을 흘렸다.

또 “이제 맘 편히 살려고 했는데 철탑이 원수다”며 “(송전탑 건설 중단 농성이)성공만 하면 얼마나 좋겠나. 한을 풀고 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우 할머니 주변에 있던 할머니들은 “이 할매가 꽈리(고추)를 짓는데 이거(송전탑 반대 농성) 때문에 못 따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니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젊고 숫자도 압도적으로 많은 한전 직원과 경찰을 향해 할머니들은 몸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사를 막기 위해 알몸으로 항의했던 한모(66) 할머니는 “경찰들 수십 명이 우리 할매들을 막고 못 가게 하는데 내가 죽어야 끝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데”라며 “못 가게 막고 아무 것도 못하게 하니 옷을 벗었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한 할머니는 “수요일에는 알몸인 할매들을 포대에 싸서 저 밑에 까지 들고 갔는데 할매들이 알몸으로 누워있는 거 보니 시체같이 보이더라”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답답해서 이장 할매(부인)가 목을 매려고 하니까 이장도 눈깔이 뒤집혀서 목을 맸다”고 말했다.

또 반대 농성을 하면서 기쁠 때는 언제인지 묻자 “한전 수법이 100가지면 우리는 200가지가 있다”며 “(우리는)한번도 져본 적이 없는데 한전을 막을 때 마다 통쾌하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공사장에 올라오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이던 곽모(67) 할머니는 힘들지 않냐는 기자에 질문에 “3년 동안 이거(송전탑 건설) 막느라 언제 나이를 먹었는지 모르겠다”며 “어머니가 강하다고 하는데 할매들은 더 강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수녀들 격려 받는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

한국전력의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이 23일 오후 경남 밀양 부북면 평밭 127번 송전탑 공사현장 앞 움막에서 격려차 방문한 수녀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양지웅 기자


“한전 수법 100가지면, 우린 200가지가 있다”

공사장 맞은 편 언덕에는 한전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 몇 명이 농성하고 있는 할머니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경찰도 주위에 있어 할머니들은 공사장 입구 쪽에 눈을 때지 못하며 긴장하고 있었다.

이날 통합진보당 이상규의원이 기자회견을 하고 밀양시 경찰서장을 만나는 자리에 한모 할머니가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할머니는 가지 않고 농성장을 지켰다. 한 할머니는 산 아래에 있는 주민과 통화하며 “할매들이 여기 있는데 우에 가노. 내가 내려가면 80명이 쳐들어온데이”라고 말했다.

밀양의 투사가 된 할머니들은 한목소리로 “우리가 목숨이 붙어 있는 한은 (이 땅을)지킬 것”이라며 “우리 아들대까지는 지켜야 되지 않겠나”라고 송전탑 건설 반대 의지를 드러냈다.


http://www.vop.co.kr/A00000637271.html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