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erium tremendum, terribile et fascinans"  (Otto, 1950[1925])

신비롭고,엄청나며, 두렵고,매혹적인

 

맹자번역학교 발제 준비를 하다가 책에 쓰여 있던 이 말

루돌프 오토가 모든 종교적 감성의 핵이라 했던  이 말은

걸리버 여행기를 읽는 내내 들었던 느낌이었습니다.

 

후기도 오랜만이고 이미 발제에서 다 떠들어서 할 말이 없을 것 같아도

문,근영샘은 또다른 시각으로 보게끔 말씀해주셨습니다.

 

조나단 스위프트에게 휴이넘의 세계란, 그의 억눌린 욕망이 실현되는 곳으로

그에게 있어서의 유토피아라고 보았는데

그 세계에서 추방을 '권고'하자 걸리버의 주인은 그에게 이런 제안을 합니다.

야후처럼 살든지 아니면 나가든지.

 

표면적으로는 나가라고 하지 않아도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자.

더 이상 야후같이 살 수 없는 그에게 이런 제안을 과연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지.

스위프트 그 자신이 영국에서는 아일랜드인으로,아일랜드에서는 다시 영국인으로 늘 예외적 존재였다는 점에서

휴이넘의 세계에서도 야후같지 않은 야후인 걸리버는 예외적 존재이고,

다시 돌아온 야후의 세계에서도 적응이 어려운, 야후의 예외적 존재임을

걸리버를 통해 우리는 작가 자신의 고뇌 또한 엿볼 수 있었습니다.

 

휴이넘의 이상 세계도 그들만의 것이었고

초월이나 내생을 바랄 수 없는데다가

현세의 영생 또한 허망함을 아는 자로 산다는 것.

 

성직자인 그가  천국과 내생과 영생없음을 알아버린,그런 성직자로 산다는 것.

앎이 진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도구로 사용됨을 알아버린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

인간 본성과 성 불구인 자신의 문제를 끊임없이 질문해야하는 자로 산다는 것.

늘 집단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여 길을 떠나지만

계속 반복되는 공동체와의 부조화를 겪는 걸리버로 산다는 것.에 대한 많은 질문들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답을 원하는 성급한 저에게 그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보람되지도 허무하지도 않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애매한 표정으로 거울 저 편에서 자신을 비추어 우리를 바라보게 합니다.

 

 

신비롭고, 엄청나며, 두렵고, 매혹적인, 조용필 Q말구~대중지성 Q 세미나에서

다시는 울지 않겠다~♩♩♬ 는 성연, 제가 간식이구요. ㅋㅋㅋ

발제는 보연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