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의 파도에 대해 나는 그다지 할 말이 없다. 그냥 몇 가지 소설 파도에 대한 단편적이고 소설에 대한 주변적인 사실들이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소설의 원제목이 나방들이었다는 것과 버지니아 울프가 파도를 좋아했다는 얘기가 그것이다. 다만 그녀가 파도를 좋아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파도를 좋아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지만 금새 생각을 고쳐먹었다. 파도를 좋아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리고는 망망대해에서 여러 겹의 파도가 몰아치는 상상을 해봤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스펙터클한 파도(쓰나미급?)도 있지만 해변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파도도 있다. 울프가 좋아한 파도는 무엇이었을까? 둘 다 일 수도 있고 둘 중 하나일 수도 있지만 이런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녀는 파도를 좋아했고 한 때 나방들이라고 이름 붙여질 수 있는 소설이 그녀가 좋아한 파도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며 그녀의 묘비에 소설 파도의 마지막 구절이 적혀졌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파도의 이미지가 그녀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한다고 한다. 부숴진다는 것은 '멸'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파도는 바다에서 확 생겨난다. 아마도 이것은 '생'을 의미할 것이다. 이처럼 생멸이 반복되는 이미지가 작가의 이미지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래서는 후기를 쓰긴 썼으나 아무 내용이 없는 글이 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수업시간을 돌이켜 보기로 한다.

 수업시작 후 간식을 먹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31세, 청년대중지성과 러시아문학세미나를 하고 있으며 이름은 김범철이라고 했다. 파도를 어떻게 읽었냐는 질문에 여러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했다는 것은 책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라 책 읽으며 한 딴 생각이다. 나는 지금까지 책을 읽다가 딴 생각하는 것도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나는 소설 파도를 읽으며 딴 생각을 했을 뿐 소설 파도에 대해 생각할 만큼 소설 파도에 닿아 있지 못했다(이 문제는 소설을 읽을 때 뿐만아니라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한마디로 산만하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첫 인상을 규 칙적으로 글을 쓴 소설가라고 말했다. 이번 소설 파도에서 나는 이것 하나만 붙들고 읽었다. 그래서 만난 것은 울프의 새로운 소설쓰기였다. 그리고 그것을 작가의 실험이라고 이해했다.

 오늘 낭금에는 태람쌤, 수영반장, 현정, 선민, 혜원, 1등으로 온 쌤, 범철 맞은 편에 앉은 쌤, 범철까지 해서 8명이 왔다. 먼저 수영이가 낭송을 했다. 낭송에 대한 수영의 해설에서 울프에 대한 이해가 느껴지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맞은 편에 앉은 쌤은 우리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부분을 낭송했다. 모두들 힘을 얻지 않았을까? 1등으로 온 쌤은 좋은 구절을 찾기위해 한 번 빼셨지만 적당한 것을 찾아서 낭송했다. 그 구절도 충분히 좋은 구절이었는데 더 좋은 구절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울프의 문장은 그만큼 무궁무진한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와 함께 toilet소지와 남산빵집을 맡고 있는 현정은 오늘의 용자였다. 그녀는 파도를 읽기 어려웠다고 했다. 나만 어려웠던게 아니었구나 생각하며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선민은 간사에 깊은 감동을 얻었다고 했다. 달 뜬 시간에 읽은 해가 떠오르는 간사는 인상적이었다. 해가 떠오르는 것을 이렇게 글로 쓸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오늘 나와 함께 저녁식사당번을 한 혜원은 목감기가 심해서 낭송할 수 없어 선민이 대신 낭송했다. 누구든 어려움을 피할 수 없었던 첫페이지문장을 주문했다. 혜원은 지니가 좋다며 지니의 대사가 끝나는 부분까지 읽기를 원했다. 태람쌤은 책을 다 읽고 다시 처음 부분을 읽으니깐 좀 더 이해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낭송을 하니깐 혼자 읽을 때보다는 더 이해되는 것 같았다.

 다음 주는 에세이 3기니를 읽는다. 풍성한 간식 준비에 나도 함께 하기로 했다. 어깨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