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從我於陳蔡者 皆不及門也 (先進-02-01)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내 어려울 때 나를 곁에서 따랐던 제자들이 지금 모두 문하에 없구나!” 하며 공자님이 고락을 같이한 제자들을 그리워하시며 함께 있지 않음을 애석해 합니다. 공자님의 제자를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 입니다.

子曰 回也 非助我者也 於吾言 無所不說 (先進-03-01)

“안회야 너는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자이다. 나의 말에 기뻐하지 않음이 없구나.”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알아 들으며 빙긋 웃기만 하는 안회에게 공자님이 은근 힐난조로 칭찬 합니다. 그 총명함이 밉상일 정도였나 봅니다. 속으로 시샘 하셨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튼 칭찬에 인색하신 공자님이 이 정도의 말씀은 실로 극찬이라 할 만합니다. 이런 안회가 죽습니다.

顔淵死 顔路請子之車以爲之槨 (先進-07-01)

子曰 才不才 亦各言其子也 鯉也死 有棺而無槨 吾不徒行以爲之槨 以吾從大夫之後 不可徒行也 (先進-07-02)

顔淵死 子曰 噫 天喪予 天喪予 (先進-08-01) 顔淵死 子哭之慟 從者曰 子慟矣 (先進-09-01)

曰 有慟乎 (先進-09-02) 非夫人之爲慟而誰爲 (先進-09-03)

顔淵死 門人欲厚葬之 子曰 不可 (先進-10-01) 門人厚葬之 (先進-10-02)

子曰 回也 視予猶父也 予不得視猶子也 非我也 夫二三子也 (先進-10-03)

안회가 죽자 그 아비(안로)가 공자의 수레를 팔아 무덤에 쓸 곽(돌로 된 관의 외벽)을 사줄 것을 청합니다. 공자님 답하시길 “재능이 있건 없건 각기 내 아들이다. 鯉(공자의 친아들)이 죽어서도 곽 없는 관을 썼으며 내가 차라리 걷고 곽을 만들어 주지 못함은 대부의 뒤를 따르기에 걸어갈 수 없다.” 하십니다.

하지만 “하늘이 나를 망하게 했도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했도다!” 하며 슬퍼하십니다. 따르던 자들이 “공자님 너무 애통해 하십니다.” 하니 “내가 애통해 함이 있었느냐? 그를 애통해 하지 않으면 누구를 애통해 한단 말이냐!” 문인들이 후하게 그를 장사 지내고자 하니 공자님 “불가하다” 후하게 장사 지내자 “안회는 나를 보기를 아버지 같이 여겼다. 나는 아들과 같이 볼 수 없었다. 그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그대들이다!”

한편 顔路의 입장에서 보면 공자의 매몰찬 태도에 서운해 할만도 합니다. 각별히 아꼈던 제자의 장례에 안쓰러워하는 아비의 심정을 헤아려 주지 않으니 말입니다. 필부의 입장에선 야속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공자님의 추상같은 잣대는 원칙 없는 인지상정을 비켜가지 않습니다. “불가하다!” 단숨에 거절 합니다. 분수를 넘어서는 행위는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일깨워 줍니다. 오히려 이로 인해 안회와 자신이 부자의 연에서 멀어지게 되었음을 지적 합니다. 때문에 후한 장례를 치른 문인들에 대한 책망은 당연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당신의 아들 鯉의 장례와 같이 안연에게도 형편에 따른 장례를 지내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총명한 안회 만큼은 자신의 의중을 알아챘으리라 하는 믿음도 보입니다.

나눔에 대한 이야기로 公冶長에서 나온 微生高의 일화도 있습니다. 식초를 빌리러 갔는데 이웃에게서 빌려다준 미생고가 정직하지 않다고 한 공자님 말씀 말입니다. 없음에도 있는 척 이웃에게 빌려서 준 행위도 올바르지 않습니다. 형편과 분수에 맞는 나눔만이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게 모두 편안함을 줍니다. 이와 같지 않은 베품은 감추어진 사욕이 늘 숨겨져 있겠지요. 공짜 점심과 같은 게 아닐까요? 아마도 공자님은 이를 경계하고자 애제자의 죽음 앞에 애통함을 제쳐두고 장례 절차의 실랑이를 하였을 껍니다.

 

 

 수업후 송년회가 있었습니다. 충무로 인근 진고개 식당에서 맛난 식사 했습니다. 식후 진행된 책교환 이벤트는 즐거운 시간이 였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일년이 지난 후기가 되었네요.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