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학인의 본분을 지키지 못한 이....의 후기입니다ㅠ

 

이번주에는 막심 고리키의 <밑바닥에서>를 읽었는데요! 1902년에 초연되었고, 1903년에 출판된 이 짤막한 희곡의 인물들은 정말 하나하나 강렬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밑바닥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은 진실을 보지않고, 외면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서로의 대화는 제대로 이어지지도 않고, 서로를 혐오스러워하며 분리되지 않은 공간에서 같이 살아갑니다. 나스탸가 운명적 사랑의 책을 읽으며 매일 대학생과의 애틋한 사랑을 꿈꾸며 삶을 연명하는 것과 다름없겟죠. 그들의 삶은 거짓의 삶이며, 일상이고, 진실이기도 합니다. 그 거짓은 살기위해 쓰는 거짓이지만 곧 진실의 삶입니다. 만약 그들처럼 가난하고 병들고, 무기력하다면, 저 같아도 현실을 제대로 마주치려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마도 그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지 않을까요? (지금의 현실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지요...)

 

어느 날 나스탸가 루카라는 할배를 밤의 주막에 데려오죠? 이 할배는 이들에게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위로의 거짓말을 합니다. 안나에게는 고통없는 천국을, 페펠에게는 황금빛 시베리아를, 배우에게는 알콜치료소를... 이 거짓말은 일시적이지만, 진실의 삶을 알 수 있게 하고 그것을 보게하기까지의 시간을 벌어주는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거짓의 삶이 진실이라는 것을 보고 스스로 자기진실을 고민하게 되는 과정에서 그들을 그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을 살게 됩니다. 파국 아니면, 인간다움을 고민할 수 있느냐의 차이겠죠. 말이 쉽지, 정직하게 진실을 대면한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그것은 유약하고 무기력한 자신을 맞대면하는 것인데... 그러나 이 과정을 넘어서는 인간만이 인간답게 사는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고리키는 말해줍니다. 그것은 다른 이가 해줄 수 없는,  나 자신 스스로 고민하고 부딪히고 깨져야하는 그런 단단함과의 싸움이지 않을까요?

 

결국 마지막에 배우는 목을 매지만, 사틴은 자기진실을 알고 같은 공간에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더 나은 인간이라는 것은, 내 존재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내가 사는 공간이 소통 가능한 공간임을 알고, 만들어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마지막에 사틴은 말합니다.

사틴: (작은 목소리로) 아이고, 노래를 망쳤어... 그 바, 바보놈이!

사틴이 계속 노래를 부를지, 아니면 노래를 멈출지에 대한 고민은 그에게 달려있습니다. 노래하는 삶은 거짓말에 의존하는 노예가 되는 삶이라는 무서운 말은 내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 연극 꼭 보고싶기도 하고, 왠지 하고 싶기도 하네요ㅎ (급마무리...-_-;;)

 

 

그럼 후기는 마치고 다음주 공지 나갈게요~~~

 

 

다음주에는 레프 톨스토이의 <국가는 폭력이다>(달팽이2008)를 읽습니다.

 

다음주 발제는 효정, 간식은 ???

 

발제 야무지게 써 가겠습니당

 

 

그럼 다음주에 봐요~~ ㅎ0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