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세상의 사람이다. 내 스스로 나의 시, 나의 문장을 짓는데 선진양한(先秦兩漢)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위진삼당(魏晉三唐)에 무어 얽매일 필요가 있는가” -이옥


“제가 널리 배우지 못하여 옛글을 미처 살피지 못하였습니다.”라고 사과하고 그럼에도 뭐라 하면 조심스럽게 “<서경>과 <시경>도 하,은,주 삼대 당시 유행하던 문장이다.”라고 말하라. - 연암 박지원

 

처음 문장은 이옥이 한 말이고 두 번째 문장은 박지원이 글에 대한 갈등을 겪는 젊은이에게 일러준 말이라고 합니다.(히~ 제가 읽다 찾은 문장은 아니구요 인터넷에서 찾은 문장입니다. 켁--;;)


  우리가 이번 학기동안 배워 알고 있듯이, 조선 후기 지배체제를 옹호하는 지식인들에게 최고의 문장은 반드시 도를 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문장은 반드시 선진양한을 본받고, 시는 반드시 성당을 본받아야 한다(文必秦漢 詩必盛唐)’는 것이 불변의 진리라 여겨지고 있었죠. 하지만 그것이 시대에 뒤쳐진 생각이란 걸 몸으로 느끼고 있는 또 다른 부류의 지식인들이 있었습니다. 연암의 무리가 그랬고 이번 시간 알게 된 이옥도 그랬지요. 그들은 순정한 도를 담은 글 들이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말하자면 그건 지배계급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삶과는 동떨어진 암호같은 거라고 여겨졌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습니다. 이미 젊은 신세대들 사이에서는 중국으로부터 암암리에 유통되는 새로운 글들이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글들은 지금 삶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지금 세상 곳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들이 담겨있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그 글들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로 표현된 글 이었습니다. 정조가 아무리 불안해하고 아무리 안 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몸에서 토해내는 글이었으니 누구든 몸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세계였으니까요. 그들에겐 이게 진짜 리얼 라이프스토리였죠.

  그래서 정조는 별 영향력 없는 이옥을 새로운 유행을 좇아 날뛰는 유생들에게 보여줄 좋은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세계를 몸에 흡수하며 살았던 이옥이었기에 그가 주류 지배지식인들의 문체를 따로 익히는 것은 무리였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옥에게 그건 몸을 바꾸는 문제였을 것 같습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던 이옥에게 주류체제의 글과는 양립 가능할 수는 있었겠으나 거기에 자신을 일치시킬 수는 없는 일 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체제와 맞서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세계에서 진실인 것들을 만들면서 살아갑니다. 주류의 글은 거대하고 순정한 ‘도’의 세계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때 묻은 나를 지우고 그런 일상을 지우고 높고 고귀한 곳에 도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옥은 그런 세계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마음 때문에 지워질 일상의 삶들, 미물들,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들을 드러냅니다. 특히나 당시 소외되던 여성의 마음에 깊은 관심을 갖었던 이옥은 “천지만물에 대한 관찰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사람에 대한 관찰은 정(情)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묘한 것이 없고, 정에 대한 관찰은 남녀의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진실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죠.

  그에게 쓸모없는 것들은 없습니다. 그랬기에 누구가의 눈에는 쓸모없는 잡초라 버려질 가라지도, 그것의 쓸모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버릴 수 없는 귀한 것이라는 걸 알았던 이옥이었습니다. 그에 눈에 들어온 세상은 쓸모없고 쉽게 잊혀지는 미물들로 어루어져 있음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고 말하면 무리일까요?


  이것이 이옥 그리고 이덕무나 박제가 홍대용이 갖고 있는 글들이 갖고 있는 정치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글은 삶 따로 글 따로가 아니었습니다. 사는 모습이 글이 되어 나왔기에 삶 자체가 정치성을 갖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분명 비장하게 혹은 온 몸을 불사르는 투사들은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삶이 나아지기를 제도나 체제에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조건들 위에서 일상의 살림살이를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삶에 기쁨이 되는 것을 찾아서 했고, 그거면 충분했습니다. 그 가운데에 그들 삶의 애환들을 담아낸 주류와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그들만의 글쓰기가 있었습니다.

  결국 문체란 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주류와는 다른 맥락에서 벌어지고 있는 글쓰기를 통해, 이덕무의 세계가 존재하고, 이옥의 세계가 존재함으로써, 뜻하지는 않았지만 주류 사상에 균열을 내며 조선 후기에 또 하나의 세계가 구축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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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12월 16일 일요일 수업은 <정조의 치세어록>을 읽습니다.

수업 내내 우리에게 무척 촉이 예민했던 정조였는데요,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그의 예민했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발제는 곰찬, 진희, 광합성 샘

간식은 상범, 벼리 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