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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

당체지화  편기반이  기불이사 실시원이

 

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

자왈 미지유야 부하원지유



산앵두나무의 꽃이/ 나부끼며 흔들리니/ 어찌 너를 생각하지 않을까만/ 집이 이토록 멀구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생각하지 아니한 것이다. (마음이 있다면)어찌 먼 것이 있겠는가”

 

-論語 제9자한편, 30장- 

 

    위는 시고 아래는 시에 대한 공자님의 말씀이다. 어떤 맥락으로 시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공자는 이 시를 통해 연시로써 연인을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보다는 思-생각한다는 것-란 어떤 것인지를 얘기한다. 진정 생각함이 지극하다면 어떤 것부터든 바라는 바에 다다르기 위해 실천을 해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할 수 있는 실천해 나가며 뜻한 바에 가까워지는 길만이 있으니 멀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 생각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감상만으로는 아직 생각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고 구체화하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구절이 있다. [子曰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以思 無益 不如學也(오상종일불식 종야불침이사 무익 불여학야): 내 일찍이 종일토록 밥을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으며 생각하였는데 유익함도 없고 배우는 것만 못하였다.] 종일 생각하는 것이 배우는 것만 못하다는 공자님. 즉, 생각만 가지고는 아무리 오래 붙들어도 진전이 없고 당장 내 몸과 사고를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생각한다는 것에는 반드시 구체적인 행동이 따라야 함을 일러, 위에서 ‘생각지 않은 것’이라고 나무란 것이다.

    [논어]에는 몇 번이고 學이 강조된다. 學은 배움 또는 공부라고 해석할 수는 있지만, 무엇을 배우라는 건지 어떻게 공부하라는 건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대체 공자의 學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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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움의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을 설명해 주시진 않지만 논어 구절들을 통해 생각해 보는 시도는 해 봐야겠다. 공자께서는 시서예악(詩書禮樂)을 중요시했다. [논어]에는 그 중에서도 시를 배우라고 하는 언급이 몇 번인가 나온다. 예를 들면, 그의 아들에게 시를 공부하라고 당부한 일, 제자들에게 왜 시를 배우지 않느냐며 나무란 일 등이다. 그래서 공자의 學을 예악보다는 시를 배운다는 것으로 먼저 연결 지어서 생각해보게 된다. 시를 읽는 것은 긴 글을 읽는 것보다 쉽지 않다. 왜인지를 곰곰이 떠올려보자니 시라는 게 설명은 적고(불친절-_-!), 맥락을 보지 않으면 개인적인 심상만 남게 되니, 자칫 내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하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고 그냥 마는 것이다. 그러면 남는 게 없다. 그래서 시를 읽으려면 단지 읽는데서 그치지 않고 생각하며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시란 생각을 함축적인 글로 드러낸 것. 시를(글을) 쓴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생각을 구현해내는 실천이며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구현된 말을 통해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님은 제자들에게 시를 배우라고 일렀다.

 

   …옛 시를 읽다보면 공자님이 말씀하시는 배움이 무엇인지 좀 더 알 수 있을까? 고전 시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