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오승은), 자기 힘으로 가라.

 

최 정 옥(남산강학원 연구원)

 

 

남극의 펭귄은 한겨울 동안 알을 낳고, 그것을 부화시키고, 봄이 올 때까지 애지중지 키운다. 산란 이후부터 털갈이를 마칠 때까지, 새끼는 온갖 죽음의 위험에 직면한다. 그래서 아빠 펭귄은 알을 발 위에 고이 얹고서 알을 부화시키고, 여름 동안 통통하게 살찌운 자신의 에너지를 새끼를 키우는 데 몽땅 쏟아 붓는다. 그러다 바다로 나간 엄마 펭귄이 돌아오면, 부모는 번갈아 가며 부화한 새끼에게 자신의 위속에 저장한 영양분을 토해내어 먹인다. 그러는 사이에 부모 모두 홀쭉하게 살이 빠지지만, 그게 부모의 운명인 걸 어쩌랴. 그런데 이 펭귄 부모, 참 멋지다. 봄이 되면,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새끼를 내버려둔 채 미련 없이 바다로 떠난다. 겨울 내내 목숨을 다해 키운 새끼건만,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사랑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음을 펭귄은 아는 모양이다.

아무리 눈에 밟히는 자식이라도 부모가 새끼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남극의 추위에 적응하고, 바다로 들어가 먹이를 사냥하고, 다른 펭귄 무리와 협동하여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하는 것, 그렇게 추운 남극에서 살아남는 것은 온전히 새끼 펭귄 자신의 몫이다. 나의 삶을 누가 대신해 줄 수 있겠는가. 모든 존재는 때가 되면 오롯이 제 두 발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저 남극의 펭귄도 안다. 그래서 펭귄 부모들은 미련 없이, 자식을 두고 제 갈 길을 간다. 새끼도 그런 부모를 원망하거나 붙들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떠한가.

 

자연계에서 인간만큼 오랜 기간 동안 부모의 보호를 받는 생물도 없다고 한다. 개, 고양이 등이 3개월 정도인 것에 비해 인간은 그 10배가 넘는 3년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물론 이것도 옛날 말이다. 지금은 3년의 5배 내지 10배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언제부터인가 부모는 자식을 제2의 자기인 양 한시도 곁에서 떼어놓지 않는다. 자식도 점점 더 부모의 치마폭에 쌓여 무능하고 이기적인 마마보이, 마마걸이 되어간다. 어려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도 엄마의 계획과 스케줄에 따라서 학원으로, 학교로 뺑뺑이를 도는 청소년들. 이들에게 엄마는 제2의의 나다. 일어나야 할 시간에 깨워주고, 밥을 해주고, 과제물과 준비물을 챙겨주며, 학교 앞까지 차를 태워주고, 방과 후에는 학원으로 독서실로 실어 나르는, 나의 아바타. 왜 자식들은 부모의 간섭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용감하게 부모 곁을 떠나 자립하려 들지 않는가.

 

[서유기]는 삼장법사와 그의 제자들이 인도로 불경을 가지러 가는 모험을 그린 소설이다. 원숭이 손오공은 도술을 배워 72가지 변신술을 부릴 수 있고,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를 수 있는 능력자다. 이렇게 되면 삼장법사는 계 탄 거나 다름없다. 손오공의 근두운을 타고 인도로 간다면 만사 오케이! 그렇지만 손오공도, 삼장법사도 알고 있다. 인도에 도착해 불경을 손에 얻는 일은, 오롯이 삼장법사 자신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삼장법사를 위한답시고 하늘을 날아가거나, 불경을 대신 가져다주는 것은 삼장법사를 무시하는 처사다. 불경은, 자신의 힘으로 힘들게 앞으로 전진하는 삼장법사가 여정에서 얻은 부수적인 결과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오공이라면 하루가 걸릴 여정을 삼장법사는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서 인도에 도착했다.

 

“사부님은 낯선 여러 나라를 몸소 다녀야만 고해를 초탈할 수 있지. 그래서 한 발자국씩 힘들게 가시는 거야. …… 이런 고통을 대신할 수도, 경을 대신 가져다드릴 수도 없어. 설사 우리가 앞질러 가 부처님을 뵌다 해도 우리에겐 경을 내주려 하지 않으실 걸? ‘쉽게 얻은 것은 소홀히 여기게 된다’는 말이 이런 걸 두고 하는 얘긴 게야.”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부모의 돈이나 권세나 명예 역시 나의 것이 아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힘으로 내딛은 이 한 걸음이 온전히 내가 살아낸 나의 삶이 된다. 인생의 목표를 세우려는 청소년 시기, 자립 그리고 자기의 힘으로 길을 가겠다는 결심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더 절실하게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