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fred Stevens
La Via Lattea, 1885-1886
68 x 53 cm, Oil on canvas
Bruxelles, Galerie Patrick Derom

"별들이 드리운 밤을 눈 앞에 보며,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

- 알베르 까뮈

밤하늘의 별은 감성적입니다. 어린 시절 마냥 밤하늘을 보는 것이 좋았고, 삼촌에게 듣던 신화 이야기는 아름다웠습니다. 글자를 배우고 문학을 접하면서 또한 별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알퐁스 도데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도 생각나지만 저에게 가장 의미있게 다가왔던 별은 바로 까뮈의 <이방인>이었습니다.

잘 알려진대로 태양이 너무 밝고 뜨거워서 살인을 했다고 진술하는 주인공 뫼르소는 재판과 세상의 부조리를 느끼며 감옥에서 모든 사람과 사물에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합니다. 인용한 장면은 마지막 속죄의 기도조차 거부한 채 사형집행일을 기다리던 그가 죽기 전날 독방 창을 통해 보이는 하늘을 보면서 '자연의 무관심에 세계가 나와 다름없고 형제 같음'을 깨달으면서 새롭게 마음의 평화를 얻는 장면입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까뮈식 분석으로는 그저 관습에 의해 기계적으로만 살아가는 일상 생활 안에서 우리는 그런 삶의 불가해함, 부조리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결국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기본 요건은 그런 부조리의 인식 이라고 해야 할까요.

소문으로만 듣던 박문호 선생님을 학인으로서 처음 뵙게 된 건 2004년 가을의 <양자역학과 인문과학> 강좌였을 겁니다. 사실 깜짝 놀랐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인데요. 대부분 인문학적 배경을 갖고 있는 학인들 앞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주저함 없이 또한 왜 그래야 하는 지 설명도 없이 보어의 원자 궤도와 슈뢰딩거 방정식을 거침없이 유도하고 계신 겁니다. 어떻게 양자역학을 인문적으로 풀어내시려나 기대하던 저는 사실 적잖이 당황해서 주변의 학인들의 얼굴을 살펴보아야 했는데요. 역시 예상대로였죠. 그래도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시는 분들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분들이 이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강의 마지막 시간까지 자리를 지켜내셨습니다.


보통 대중을 위한 강좌에 나서는 과학자들에게는 과학적 사실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만 요구되어 왔습니다. 논설도 하고 주장도 하고 싶은 사람에게 설명만이 강요되었던 것이죠. 과학자들의 언어는 수학이다 보니 하고 싶은 말들이 있어도 인문계의 장벽에 막혀서 입을 봉하고 사는 것과 같았습니다. 수학을 이해 못하는 사람에게 자연의 가장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이해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과학자들은 믿습니다. 사실 그게 사실일지도 모르죠. 19세기 중엽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버린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소설가 스노(Charles Percy Snow)의 언급 이후 이 세상은 둘로 나뉘어 버렸습니다. 과학자들 입장에서는 수학이라는 배경을 갖고 자연을 한 번이라도 올바로 이해해 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나뉜 것이고, 사실 인문학자들에게는 어쩌면 실제 세상 살이에는 별 도움이 안되는 관심없는 세상이었던 것도 사실일 겁니다.

하필이면 그것이 수학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자연을 배우고 자연을 올바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자연이 이야기하는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겠죠. 그런데 자연이라는 것이 수학이라는 한가지 형태로만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더구나 인간은 스스로가 어떤 관심을 보이기도 전에 자연더러 변하기를 요구해도 될 만큼 위대하지 않습니다.

자연과학자들은 이렇게 '문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연에 대한 이해를 전달할 수 없다고 포기합니다. 철학자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정성적인 설명 방법으로 자연을 이해하고 가르치려고 할 것이고, 물리학자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 안됩니다.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수업 시간에도 언급된 것처럼 우리 뇌의 구조가 우주의 중심은 인간이라는 식의 환상에 의해 제한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감각기관을 통해 전달되어 우리 안에서 형성된 어떤 느낌의 세계이니까요. 뫼르소가 깨달았던 것처럼 실제로 자연은 인간하게 무관심합니다. 다정하게도 말입니다.

양자물리학에 대칭 원리를 도입한 선구자로 1963년에 노벨상을 받은 위그너(E. Wigner)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 바가 있습니다.

"자연과학에서 나타나는 수학의 엄청난 유용성은 신비에 가깝다...
여기에는 어떤 합리적인 설명도 없다. "


제가 좋아하는 글인데요. 혹시, 원문이 궁금하신 분을 위해 링크합니다.

: The Unreasonable Effectiveness of Mathematics in the Natural Sciences" <원문 보기>

참고로 악동(?) 스티븐 와인버그 선생님은 이 문장을 댓구해서 "The Unreasonable Ineffectiveness of Philosophy in the Natural Sciences" 라고 유머를 구사하신 바가 있죠. ^^

아인슈타인도 이에 대해서 참으로 감탄해 하면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How can it be that mathematics, being after all a product of human thought which is independent of experience, is so admirably appropriate to the objects of reality?

Is human reason, then, without experience, merely by taking thought, able to fathom the properties of real things?

어떻게 수학은, 결국은 경험과 무관한 인간 사고의 산물인데도, 그렇게 경탄할만큼 현실의 대상에 들어맞을 수 있을까?

인간의 이성이, 그렇다면, 경험 없이, 순전히 사고를 통해서, 실재하는 것들의 성질을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은 이렇게 너무나도 유명하신 말씀으로 결론을 맺으십니다.

The most incomprehensible thing about the world is that it is at all comprehensible,

세계에 대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그것을 결국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학이 더 이상 단순한 계산 도구가 아님은 이미 잘 알고 계시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주의 바탕을 이루는 구조가 수학적일까요? 하지만 수학이나 물리학에서는 플라톤적인 실재론을 논하지 않습니다. 신중해질 필요가 있죠. 엄격한 수학적 논의에 덧붙여진 것은 수학적으로 표현 가능한 불변의 자연 법칙의 존재입니다. 수학은 우리에게 풍부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주면서도 우리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비교하면 그들 중 몇가지만이 자연을 설명합니다.

수학이 자연과 또한 물리학과 연관되어 있지 않다면 단순한 계산과 데이터 목록을 생성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연관성이 밝혀지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직관의 세계를 넘어서 원자나 우주같은 감각 인지 너머의 것들을 탐구 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 주변의 사건들을 기술하는 기초 역학 수준에서는 모든 게 구체적이고 눈에 보이기 때문에 소위 '직관(intuition)'이 매우 유용하고 유효한 수단이고 수학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인간의 지각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수학적 기술에 기댈 수 밖에 없습니다. 고전 물리학의 칸트적인 시각화된 개념들을 원자나 우주 영역으로 가지고 가려면 더 추상적인 언어와 메타포가 필요하게 됩니다.

대략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들은 뉴튼의 위대한 업적인 F=ma 를 따릅니다. 행성의 운동에서 갖고 노는 야구공의 경로까지 모두 이 하나의 방정식으로 기술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방정식의 구조나 물리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문제는 어떻게 이런 모습의 수식이 무슨 이유로 그토록 보편적이고 전우주 어디에나 통용될 수 있는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죠. 도대체 어떤 이유로 수학이라는 바다 속에는 자연을 기술할 수 있는 언어가 숨겨져 있을 수 있는가 라는 의문입니다.

물론 뉴튼의 방정식의 유효성은 한정되어 있다는 게 밝혀져있죠. 양자역학에서 뉴튼의 방정식은 아래와 같이 기술됩니다.


여기에는 파동함수라는 시각화할 수 없는 추상적인 메타포가 등장하는데요. 이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 역학 전체를 숙지하고 그 해석에 대한 수학적 이해를 통해서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여기서는 우리의 직관으로 알 수 없는 추상적인 파동함수를 알기 위해서는 파동 방정식과 슈뢰딩거 방정식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자연과의 대화를 위해서는 수학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박문호 선생님은 밑도 끝도 없이 이런 세상도 있다는 것을 몸소 분필가루 뒤집어 쓰면서 시연해 보이고 계십니다. 물리학은 우주의 언어입니다. 수학은 모든 과학의 언어입니다. 또한 생물학은 모든 생명의 언어입니다. 언어를 모르면 우주와 이야기 할 수 없고 과학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둘러싼 뭇 생명들과 대화할 수 없습니다. 언어는 외부와의 접촉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기초과학이 필요하고 진정 대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수학이 필요한 것이죠.

그간 꽤 자연 과학 교양서적을 읽어 온 편입니다. 하지만 권수만 늘어갈 뿐 늘 핵심을 비껴 겉돌고만 있었음을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0년만에 교과서를 다시 펴게 되었고 그 아름다움과 재미를 새삼 깨달아 가는 중입니다. 진짜 아름다움은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고서는 즉, '몸'이 변하지 않고서는 '몸'으로 느낄 수 없었던 것이죠. 선생님은 절대 친절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탁월한 자연과학 전령사 이신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번에 유도하신 일반 상대성 운동 방정식은 사실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도 대학원에 가지 않고서는 실제로 다뤄보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선생님 이론대로 일단 주입하기의 효과는 대단해서 실제로 그 부분을 공부하게 될 때는 놀랄만한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글주변이 없어서 이번에도 역시 두서없이 장황합니다. 쓴 것도 아깝고 퇴고주변도 없어서 그대로 줄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수학이 표현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에 빠져 사는 사람들의 세상도 있음을 느낌을 전달 받을 수 있었다면 이번 강의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수리 물리학책을 쓴 하시니(S. Hassani)의 책 서문을 소개하면서 후기를 줄입니다. 텐서 해석이 탁월한 수리 물리 책 중 백미에 속합니다.

It is said that mathematics is the language of nature. If so, then physics is its poetry.

수학은 자연의 '언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물리학은 자연에 대한 '시'다.